

무대 디자이너의 글 (SPACE 98.05 에 실린 글)
-이 학 순-
연출가의 주된 관심은 무대가 갖는 회화성이었다. 왜냐하면 과거 악극의 무대양식은 이차원적 회화무대가 그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서양 뮤지컬 무대미술은 인위적이고 사실적인 형태를 보여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보다 자연스럽고 인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무대를 표현하자는 것이 연출자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시 말하면 뮤지컬 무대에로의 접근이 아니라 오페라적인 무대로의 접근이었다.
이런 오페라적인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 몸담고 있는 쟌니 몬토나띠(Gianni Montonati)와의 협업을 생각하게 되었다. 작품이 요구하는 장면은 여섯 장면으로 숲 속, 18연대 병영, 극장, 분장실, 국화서점(항구), 겨울 숲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숲 속, 병영, 겨울 숲 등은 이차원적 회화성으로 완성하는 데 별 무리가 없었지만, 극장과 국화서점은 회화만 가지고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회화성을 갖는 원근법 장치가 요구되었고, 극장 장면이 갖는 입체 구조에 원근법을 적용했다. 이것은 이삼차 공간의 모순을 해결함과 동시에 회화적 통일성을 갖게 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장면은 20회 가까이 전환되어야 했다. 따라서 극의 리듬을 발전시키고, 극적 공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제로의 장면 전화시간이 요구되었다. 회화 장치물 들은 극장에 상부구조를 이용하여 오르내리게 하였고, 극장 장면과 분장실은 실제무대에 회전무대로 배치하였다. 국화 서점에서 겨울 숲으로 전환되는 부분이 여러 번 토론되었는데 결국, 국화 서점은 하부구조인 리프트 무대와 상부구조 모두를 사용하게 되었다. 즉, 원근법적인 국화서점 장면은 무대 밑에서 올라오고, 하늘 부분은 상부에서 내림으로 무대를 상하로 결합, 완성된다. 이어지는 겨울 숲은 역순으로 무대가 중앙에서 상하로 열리면서 극이 진행되도록 구성하기로 합의, 작업에 들어갔다. 결국 역동적인 표현이 가능해졌고, 극의 리듬을 더해주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무대미술에 있어서 나에게 중요한 요소는 건축적 구조(style),회화성(picture),조형성(sculpture)등이다. 건축적 구조는 양식을 결정해 줄 뿐만 아니라 연기 공간을 설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회화성은 재료를 결정지어주고 질감, 색으로 건축적 구조를 완성시킨다. 조형에는 보다 세부적인 입체를 완성하기 위해 빛에 대한 섬세한 연구가 필요하고 무대미술에 있어서는 마지막 작업에 해당된다 하겠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연출, 배우, 다른 스탭들과 협연되어야 하고, 혹은 필요에 따라 무대장치 단독으로 독주되어야 한다고 본다. 혹자는 무대미술은 오케스트라와 비교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작곡자와 같고, 그 곡을 지휘할 수 있는 훌륭한 지휘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요구된다. 국내의 현실에서 이러한 전문가의 부재로 결국 회화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나의 스승이었던 몬토나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이탈리아 라 스칼라에서 30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고 프랑코 제페렐리, 죠르죠 스트렐러, 에찌오 프리제리오 등과 같은 세계적인 연출가, 무대미술가와 일한 경험이 있는 훌륭한 작화가이다.
몬또나띠와의 작업과정에서 가장 신중하게 공부 되어진 것은 회화가 서양적으로 보여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회화의 스타일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가져야 했고, 여러 번의 시행 착오를 거친 후에야 합일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또다른 문제점은 색채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국내의 안료는 다양한 색이 생산되지 않고 건조 후 그 채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 밖에 도구와 작업환경의 문제점에도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와의 협업은 다른 작업들에 비해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것은 다른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무대미술은 관객들에게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극의 흐름과 함께 발전되어지고 전개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생산라인 과정에서 오차 없이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기계시스템처럼 무대 장치 또한 작동되어져야 한다.
이번 <눈물의 여왕> 무대미술은 과거 악극 형태의 재현이 아닌, 우리가 느끼는 그 추억의 재현에 비중을 두었다. 마치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때 까맣게 잊고 있었던 빛바랜 사진을 발견한 것처럼 그 때 볼 수 있는 추억의 미소를 지금의 관객에게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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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 향” 이름만 들어도 설레 입니다. 어느 누가 방년 16세인 여인을 맞이 할 것인가요? 자! 무대는 그런 설레임일 것입니다. 방년 16세의 어린여인의 가슴을 맞이하는 그런 설레임 말입니다. <춘향>의 첫 장면은 당연 그네 타는 모습일 것입니다. 언급 했지만 그네 타는 춘향의 모습과 그 아름다운 젖가슴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자, 무대미술의 접근 방향이 결정 되었습니다. 춘향은 그네 타고 몽룡은 그 모습을 보고 날 때마다 펄럭이는 치마, 그것도 다홍색 치마...아! 나에게는 그런 순간이 올까요? 아니면 관객여러분에게도 그런 상황이 올까요?
의례 <춘향>의 첫 장면인 광한루는 오른편 혹은 왼편에 광한루를 놓고 춘향은 그네를 탑니다. 춘향은 왜 그네를 타고 몽룡은 왜 그 모습을 지켜볼까요? 몽룡은 지금말로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입니다. 춘향은 그 순진한 고시생을 꼬드기는 여인고요. 여기에 춘향의 영리함과 영악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마땅히 춘향이 그네 타고 놀 때 몽룡이 나타나도 그녀는 그냥 무시 할 수도 있습니다. 춘향은 몽룡을 부르고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싹틔웁니다.
춘향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비추는 인물입니까? 요녀, 색녀 아니면 요조숙녀? 이쯤 되면 이제 무대 공간 설정을 할 수 있겠죠? 무대는 화창한 광한루라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역사적인 광한루도 필요 없고 다만 춘향과 몽룡이 만나는 그런 단순한 공간입니다. 그네를 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도 붉은 다홍치마에 하이얀 속 고쟁이를 입은 그 모습을요. 아마 몽룡의 아랫도리도 심상치 않겠죠?
자, 무대는 힘차야 되겠군요. 즉, 춘향의 그 현란함과 몽룡의 그 젊은 힘이 비춰져야 할 것입니다. 몽룡은 무대의 위쪽에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아래쪽에 있어야 할까요? 남녀의 성적 상징으로 봐서 당연히 춘향보다 위에 있어야 하겠죠? 둘은 서로를 확인 한뒤 부용당에서 사랑을 나눕니다. 저는 이 춘향을 생각하면 회춘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겠지요.
몽룡은 춘향을 찾아 춘향 집에 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죠?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무대이어야 될까요? 춘향과 몽룡이 한 몸이 되는 그런 무대, 처용무를 생각 할 수 도 있습니다.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을 배 같은 공간으로 표현 합니다. 그들의 항해에 따라 변화하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이때 여기에 예견치 않던 변학도가 등장합니다. 으레 드라마가 그렇지 않습니까? 변학도 그는 누구라고 해석해야 하나요? 저 또한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사람인데 변학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변학도는 춘향을 원합니다. 하지만 변학도는 춘향이 외의 다른 여자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왜 하필 춘향을 그리 고집 할까요? 그건 춘향에 대한 심볼을 심어 끌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 춘향에 대한 의절이 각계 각 층에 메아리치길 원한 작가의 의도일까요? 자 변학도가 자리 잡은 무대미술은 이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권력과 서민의 대립을 표현하며, 성적인 즉, 남성과 여성의 성적 권력구조를 표현합니다. 그러면 무대는 어떻게 구성 되어야 합니까? 화려한 동헌이 있고 그 위에 변사또 그리고 아래엔 춘향. 그리고...
여기엔 무대를 압도할 만한 절대 권력자인 변사또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대응하는 나약한 춘향. 자, 여기에 극적 반전이 있습니다. 춘향이 감옥에 들어가고, 몽룡이 장모를 찾고...그런거 다 사족이고요, 몽룡은 마침내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탐관오리 변사또를 응징하며 춘향을 구해냅니다.
우리가 너무 흔히 알고 있는 이런 story가 왜 진행될까요? Finale에 대한 무대미술은 무엇일까요?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음성과 함께 어사출또가 터지고... 아닙니다! 실망해져가는 현실에 대한 각성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는 화려함 보다는 춘향의 심정을 대변하는 그런 공간으로 대처하고 싶습니다.
<루치아> 광란의 아리아가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다. 결혼식 첫날밤 신랑을 죽이고 부르는 노래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 그녀는 그러한 행동을 하고 , 그것은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인가? 이것이 <루치아>에 대한 무대공간의 접근이다. 정상적인 여인에서 광란까지 내달음질 치는 극의 드라마에 무대장치적인 요소를 감히 대응해 보자는 의도이다.
작위적이며, 이성적이고, 정신나간 루치아에 대한 성격은 반 투명적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떨땐 정면으로 어떨땐 비상식적인 내면구조를 반투명의 거울로 대변하고자 한다...
무대는 5개의 반투명 거울판이 있을것이다. 그 반 투명 거울판이 끊임없이 리듬과 일을 하면서 루치아의 심리를 대변해보고자 한다. 그 거울들은 루치아의 내면이며 이중적인 즉, 때로는 직접적으로 반사되고 때론 간접적으로 반사되는 매체이다. 이 재료(장치)는 루치아와 관련되는 루치아 오빠인 앤리코와 그의 연인 에드가르도, 그리고 그의 약혼자인 아르투로와의 관계에서 서로 상호적으로 변화와 심리적 리듬을 표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코틀랜드의 영국적인 공간표현도 필요없다. 다만 루치아의 극적 리듬을 중요시 한 무대 공간일 따름이다. 관객은 그 리듬을 쫓으며 극적 감동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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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raviata" 무대디자이너의 글 -이학순-
지금까지 취급한 작품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러 번 디자인 접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본질의 접근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
작품(텍스트)는 당연히 사실주의적인 공간을 토대로 하고 있다.
'Violetta'가 파티를 벌이는 “홀”, 교외의 저택, 또 파티장인 플로라의 집, 죽음을 맞이하는 'Violetta'의 집, 사실주의 공간과 작품이 갖는 내면적인 공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La Traviata" 디자인의 Point이다.
'Violetta'의 파티장, 여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무도회의 파티석상에서 이 극의 줄거리인 'Violetta'와 'Alfredo'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서로의 사랑이 싹을 틔우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무도회장을 내포하는 시각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화려한 샹들리에, 촛불들, 호화로운 가구들, 음식, 술, 그리고 화려한 드레스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여기에서는 'Violetta'와 'Alfredo'의 사랑이 싹트는 공간이 필요하다. 화려함보다는 사랑의 보금자리로 치닫는 전조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도대체 무엇이 사랑에 대한 표현인가?
그것은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의 공간이다. 공간은 싱싱한 풋과일 같은 공간으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건축구조는 화려한 구조보다는 신선하고 싱싱한 구조가 채택되어져야 할 것이다. 싱싱한 건축구조, 각진 기둥보다는 원형적인 구조, 각진 벽면보다는 원형적인 벽면들, 화려한 샹들리에 보다는, 살아서 숨 쉬는 촛불들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Violetta’의 허망하고 외로움이 표현되는 구조여야 한다. 파티가 끝나고 쓸쓸한 외로움에 쌓여 ‘Alfredo’에 대한 감정에 휩싸일 때, 창문 밖에선 그의 음성이 들려오는 아늑하면서, 고독한 구조가 필요하다.
물론, 정답은 없다. 정답은 결국 관객 개개인과의 만남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2막 1장은 'Violetta'와 'Alfredo'만의 은밀한 공간이다.
외부의 눈을 피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해하는 그런 공간이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불행을 예고하듯 'Alfredo'의 아버지인 'Germong'이 'Violetta'에게 찾아온다. 둘만의 사랑의 보금자리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Germong'은 아들인 'Alfredo'와의 헤어짐을 명령하고 'Violetta'는 절망감에 빠져든다.
어떤 표현으로 이러한 상황을 시각적으로 대변 할 수 있을까?
평화롭고 사랑스런 공간에서 황량한 들판과 같은 공간의 전이가 필요하다. 보호받는 새장과 같은 공간에서 허허벌판의 들꽃과 같은 상황으로 전개되는 'Violetta'의 심정을 대변하는 무대여야 할 것이다.
Alfredo의 곁을 떠나 다시 파리의 사교계로 돌아온 'Violetta'!
파티가 열리는 플로라의 거실인 2막 2장, 'Violetta'에 대한 오해를 품은 'Alfredo'가 이 파티장에 나타나면서 정열적인 파티장은 얼어붙는다.
파티장이 보여주는 핵심은 무엇일까?
정열적인 투우사의 합창이 불려지며 화려한 무희들의 춤이 보여지는 파티장엔 무엇이 필요한가? 그 필요한 요소들은 드라마로 어떻게 발전시키며 변화할 것인가?
술과 도박이 벌어지는 밤의 세계에서 'Alfredo'에 의해 처절하게 수모를 당하는 'Violetta'의 심정과 상반되는 그런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화려함 보다는 찢겨지고, 무너질 듯한 구조가 필요할 것이다.
험악한 상황이 정리되는 'Germong'의 등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위엄적이고 근엄한 아버지의 등장을 연출하는 리듬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문을 통한 등장보다는 리듬적인 등장이 필요할 것이다. 'Alfredo'를 나무라며 아들을 인도하는 강직한 수직구도의 리듬을 요구한다.
3막
'Violetta'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Alfredo'와 화합을 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서 죽음과 사랑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 몸은 비록 병들어 죽음으로 향하지만 정신적인 화합을 하는 'Violetta'의 마음을 대변하는 무대장치가 필요하다.
화려한 환락가의 주인공에서 가냘픈 여인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애틋한 공간이 필요하다. 병든 ‘Violetta’가 밖의 세상을 (‘Carnevalle’가 열리는)동경하며 창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창문은 필요하지 않다. 화려한 ‘Carnevalle’의 실루엣이 보여지는 배경이 더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배경과 ‘Violetta’를 아늑하게 감싸주며 마치 ‘Alfredo’가 감싸주듯이 편안한 삶의 마감을 정리하는 듯한 안정된, 바로크적인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관객들 눈 속의 눈물방울에 비추어 살아 숨쉬는 그런 'Violetta'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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