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무대미술가로서는 벅찬 작품이다. 어떠한 무대미술가라도 한번쯤은 도전하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일 것이다. 돈 까를로에는 각각의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사랑, 권력, 그리고 종교적인 요소들이 한꺼번에 모두 포함된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원작을 쓴 쉴러와 베르디의 만남으로 이 위대한 작품은 탄생되었다.
흔히 공연작품 줄거리 속의 갈둥 구조 소재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본다.
첫째, 가장 흔하게 접할 수있는 '춘희'와 같은 멜로드라마 형식의 사랑,
둘째, '햄릿'이나 '멕베드'처럼 비극적 결말로 이끄는 갈등으로 이루어진 권력,
그리고 세번째 종교이다. 사랑의 갈등, 권력의 갈등, 종교적 갈등, 이러한 모든것을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은 그리 쉽게 만날수 없다. 하지만 돈까를로 에서는 이 모든 것을 만날 수 가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어떻게 이 무대 공간을 풀어야할지, 작품에서 무대공간의상승, 그리고 지루함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가 사실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1막 1장의 수도원, 어떠한 양식을 채택해야 할지에는 전체적으로 중세의 스타일을 취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작품은 마치 그리스의 비극처럼 까를로와 엘리자벳과의 운명적인 미래를 암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기에 이의없이 고딕의 양식을 채택하여 본다. 수도원에서의 만남과 운명은 분명히 극적으로 발전, 전개될 것이다. 무대는 정지하지않고 변화, 진행될 것이며 관객은 그 과정을 통해 극의 흐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서재는 무엇을 의미하는 공간일까? 많은 공간 중에 왜 베르디는 서재라는 공간을 설정하였을까? 서재 안에는 책들이 많을 것이다. 책들이 의미하는 것은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것처럼 책들이 있는 즉, 진실이 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자. 카를로는 필리포와 대립되고 에볼리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된다. 즉 진실을 얘기하게 되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대는 책으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이다.
"대관식"은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화려한 무대 장면만을 연출하기 위해 준비한 장면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엔 세가지 층의 건축구조가 필요하다. 군중, 왕권, 종교가 그것이다. 이 세 층이 서로 갈등하느 구조가 될 것이다.
종교적 힘이 강한 중세적인 시대 (정확히 16세기 이지만)에 대립하는 필리포 왕과 그 백성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카를로의 심정을 대변하는 그런 건축구조가 필요하다. 관극을 하다보면 무대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하게 관극을 하는 경향이 많이 있기도 하지만 반면 작품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구조에 대한 분석을 해본다면 보다 극적인 공연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관식의 장면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종교성이 강한 구조이기 때문에 고딕의 건축구조가 필요하다. 고딕의 장식이 그 어떤 양식보다 강한 종교성과 결탁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무대에서 극과 결합되어 치솟을 것 같은 건축구조의 장엄한 감동을 맛보게 될것이다.
카를로는 아버지인 부왕과 맞서다 결국 감옥으로 향하게 된다. 감옥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보통은 꽉 막히고 갇힌 속박된 그런 공간이겠지만 카를로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 공간은 육체만 소유할 수 있을뿐, 그의 정신은 속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무대를 갇힌 공간이긴 하지만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고 날아갈 것 같은 그런 공간으로 표현해본다.
카를로는 그의 조부인 필리포 5세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아니면, 현세가 아닌 미래의 세상으로 떠나게 된다. 자, 이러한 무대공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현세가 아닌 내세로 떠나는 카를로의 공간은 당연히 수평적인 구조가 아닐 것이다. 수평적 구조는 당연히 인간적 상등관계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축구조는 수직구조임이 예상될 것이다. 으례 높은 계단이 형성될 것이며 카를로는 그 계단을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의 조부인 필리포 5세가 카를로를 부를때 무대는 극적으로 열린 공간으로 연출되며, 스모그와 같은 무대효과도 덧붙여질 것이다. 돈 카를로와 필리포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대본은 무덤 속에 있는 필리포 5세가 그 손자인 카를로를 데려간다고 되어있다. 카를로가 무대에서 필리포 5세에게 가야하므로 무대장치는 가로로 혹은 세로로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열려야한다. 나의 선택은 당연히 수직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그 방법이 가장 비 현세적인 건축구조라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긴 시간 동안 관극하고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에 행복한 미소가 머무름을 생각하며..
"Un Ballo in maschera" 의 무대디자인 접근의 출발점이다.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시대에 오면서 오페라 무대미술으 혁신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중심엔 무려 2세기 3대에 걸쳐 활동한 'Bibienna'가문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동안 국내 오페라 무대미술의 경향은 국내 무대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외국 디자이너들도 많은 활약을 해 왔지만 전통적이며 정통적인 무대디자인을 선보인 것은 그리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과거의 방식을 재현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 시대의 그 방식을 답습하고 현재의 시각에서 재연출하는 것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장인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사멸되어져가는 현 시대에서 감히 바로크 무대미술의 진수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나의 자만심의 발로일까? 그것은 오로지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그 평가가 결정되어질 것이다.
자, 그러면 1막 1장을 보자!
구스타프 왕의 공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왕권공간이다. 굳건한 왕권을 상징하는 건축구조는 당연히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스웨덴 북유럽의 강한 블루의 색조를 택하는 것도 당연한 발상이다. 그의 심복인 레나토와 우정을 다짐하지만 운명의 힘에 이끌로 울리카의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그러한 공간이다. 운명을 예고하는 울리카의 공간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미스테리한 공간이다. 그 곳이 동굴이든 낡은 선박이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레나토와 그의 아내인 아멜리아와 국왕인 구스타프의 삼각관계처럼 비밀스럽고 깊은 수렁같은 공간이다. 수직으로 뻗은 직선의 건축구조는 울리카의 예언이 그리스 비극처럼 피할 수 없는 신탁과 같은 그러한 공간이다.
구스타프의 연인인 아멜리아는 울리카의 예언을 듣고 해변가의 사형장으로 가게된다. 여기에선 사형장의 살벌한 장소적 의미나 정신적 시련의 장소보다는 구스타프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때문에 대본에서 설명되는 살벌한 사형장의 이미지보다는 사랑을 확인하는 낭만적이면서 비극으로 치닫는 결말에 대한 암시가 필요할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두 사람인 구스타프와 아멜리아와의 관계를 확인한 레나토는 그의 서재에서 구스타프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레나토의 서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은 복수를 불태우지만 구스타프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 보여지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건축구조는 당연히 정직하며 곧고 바로크적인 대칭구조이다. 레나토에 의해서 암살당하게 되는 암시를 두상이 가려진 구스타프의 초상화에서 대변 될 수 있을까?
구스타프의 충직한 심복인 레나토가 구스타프를 암살하는 마지막 장면인 가면 무도회장은 어떠할까? 화려한 이미지보다는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배경은 끝없이 펼쳐지고 건축구조는 비대칭적이며 예정된 운명 같은 것에 빨려들어 갈 듯한 그런 건축구조일 것이다. 여기엔 화려한 샹들리에도필요없으며 레나토에게 죽음을 당하는 구스타프의 남성적인 호화로움이 돋보이는 건축구조가 필요하다는것이 나의 생각이다.